우리가 내뱉는 말의 무게와 그 이면에 숨겨진 인간의 연약함,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덮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해 살펴 보고자 합니다. 맹세란 본래 자신의 말이나 의지를 반드시 지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걸고 하는 강력한 다짐입니다. 우리 역시 국가에 대한 맹세나 결혼 서약, 혹은 임직 시의 서약처럼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하나님과 공동체 앞에서 약속의 시간을 갖곤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5장을 통해 "절대로 맹세하지 말라"는 다소 당혹스러운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이는 성경 곳곳에 나타나는 수많은 서약과 약속의 전통, 심지어 사도 바울이 하나님을 증인 삼아 자신의 진실함을 토로했던 모습과 대조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의 진의는 형식적인 맹세를 금지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굳이 맹세나 서약으로 자신의 진실함을 증명할 필요가 없는 상태, 즉 그 존재 자체가 이미 신뢰와 약속이 되는 삶을 의미합니다. 과거 유대 역사학자 요세푸스가 에세네파 사람들을 향해 "그들의 말 한마디는 어떤 맹세보다 힘이 있다"라고 기록했듯이, 우리 역시 따로 확인하거나 체크할 필요가 없는 신뢰의 존재로 부름받았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맹세하지 말라"는 표현을 다섯 번이나 반복하신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인지를 일깨워 주시기 위함입니다. 이는 단순히 실수를 경고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본질적으로 자신의 약속과 맹세를 온전히 지킬 능력이 없는 존재임을 폭로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머리카락 하나도 마음대로 희거나 검게 할 수 없는 한계를 가진 존재입니다. 어제 가졌던 굳은 결심이 오늘 흔들리고, 하나님 앞에서의 다짐을 수없이 번복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솔직한 모습입니다.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나의 대단한 신념이나 굳은 의지 때문이 아니라, 끊임없이 실패하는 우리를 용납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이웃의 사랑 덕분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연약함과 대비되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창세기 15장의 '횃불 언약'에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실 때, 아브라함을 깊은 잠에 재우시고 홀로 쪼개진 짐승 사이를 지나가셨습니다. 이는 상대방이 약속을 지키지 못할지라도 하나님 당신께서 스스로를 그 약속에 묶어 반드시 성취하시겠다는 전적인 은혜의 선포입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과 사람을 배반하며 신실하지 못할 때가 많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형편과 상관없이 당신의 사랑을 끝까지 지켜내십니다. 그러므로 성숙한 신앙인은 자신의 의지를 과신하는 사람이 아니라, 도리어 나의 무능함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자비로운 사랑에 기꺼이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은 "예 할 때는 예 하고, 아니요 할 때는 아니요 하라"고 말씀하시며, 그 이상의 과장이나 수식은 악한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이는 우리에게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풀리거나, 다른 사람과 끊임없이 비교하며 자신을 허영으로 치장하지 말라는 요청입니다. 우리는 종종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자신을 과장하고, 주어진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비교 속에서 불행을 자초하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연결된 가장 건강한 삶은 '나답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형편과 상황,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고통까지도 하나님 안에서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이 진정한 신앙의 여정입니다.
결국 '맹세하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은 우리를 억압하기 위한 금령이 아니라, 거짓과 과장의 피곤한 삶에서 벗어나 진실하고 자유로운 삶으로 초대하시는 사랑의 음성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서고, 자신의 연약함을 감추기 위해 맹세를 남발하는 대신 하나님의 신실하신 손길을 신뢰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시는 주님과 함께, 나 자신을 부풀리지 않고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예"와 "아니요"를 분명히 하며 참된 행복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나의 결심이 아닌 주님의 은혜를 붙들고 살아갈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 속에서 진실한 생명의 빛을 드러내는 복된 성도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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