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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요약
옛 사람들에게 말하기를(출애굽기 20:7-17 / 마태복음 5:21-26) - 4월 12일
2026-04-19 08:15:31
전주강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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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제자들이 이 땅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주시며, 단순히 율법을 문자 그대로 지키는 수준을 넘어 그 계명의 의미를 우리 마음의 차원으로 깊이 끌어내려 우리의 삶에 도전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구약의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다고 선포하셨는데, 이는 구약 말씀이 부족하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우리의 근본적인 태도에 대한 강력한 도전입니다. 우리는 흔히 자신의 틀과 익숙한 해석 속에 갇혀 하나님의 말씀을 제한하곤 하지만, 예수님은 과거의 전통이나 고착화된 생각에 머물지 말고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생생한 하나님의 음성을 늘 새롭게 마주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우리가 아는 하나님은 지극히 일부분일 뿐이기에 우리도 내가 절대화하고 있는 고정관념의 틀을 깨고 더 깊은 하나님의 마음을 찾아가는 신앙의 여정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이러한 유연하고 열린 마음이 있어야만 우리는 비로소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하나님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예수님은 '살인'이라는 계명을 우리 내면에서 일어나는 '분노'의 문제와 연결하십니다. 타인을 향해 과도하게 화를 내거나 '얼간이' 혹은 '바보'라고 부르며 인격을 비하하는 행위는 상대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는 것으로, 예수님은 이를 실제 살인과 다름없는 무거운 죄라고 경고하십니다. 분노는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자연스러운 감정이지만, 그 감정에 자신을 일치시키고 그것이 나를 완전히 지배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결국 과도하게 자기 자신에게만 매몰되는 '교만'의 죄로 이어지게 됩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말하는 교만은 타인을 업신여기는 것뿐만 아니라, 자기 연민이나 분노와 같은 감정에 오로지 집중하여 곁에 있는 타인이나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감정의 노예가 될 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의 물줄기는 막히게 되며, 결국 영적인 단절을 경험하게 됩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제단에 제물을 드리기 전에 먼저 원한을 품은 형제와 화해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사람과의 관계 회복이 곧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으로 직결되기 때문에,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은 예배는 온전할 수 없습니다. 우리 안에 일어나는 부정적인 감정의 짐을 하나님 앞에 진실하게 쏟아놓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시편의 선배들이 그러했듯이 우리의 탄식과 분노를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갈 때, 하나님은 그 거친 에너지를 사랑과 이해, 그리고 공동체를 위한 헌신의 에너지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하나님이라는 거룩한 통로를 거친 우리의 악한 감정은 비로소 세상을 치유하는 긍정적인 사랑의 힘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나아가 출애굽기 21장의 말씀을 통해 보면, 고의로 사람을 해하는 악행은 상대방을 업신여기는 '오만한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만만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나 사회적 약자들을 대하는 태도가 곧 우리의 참된 신앙의 척도임을 일깨워 주십니다. 특히 4월 16일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며,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어떻게 대하느냐가 이 시대의 많은 비극을 막는 핵심적인 열쇠임을 깨닫게 됩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인 배우자와 자녀, 부모님부터 시작해 내 곁의 이웃을 존중과 사랑으로 대할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더 크신 통치와 세계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내면의 분노와 상처를 주님 앞에 내려놓고, 서로를 온전히 품어내는 사랑의 제자로 살아가며 이전보다 더 깊은 은혜의 여정을 걸어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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