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우리를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불러주셨다는 너무나 익숙하고도 소중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흔히 거대한 바다가 썩지 않는 이유는 그 안에 포함된 단 3.5%의 염분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많은 이들은 소금이 바다의 부패를 막듯, 우리 교회 공동체도 세상이 부패하지 않도록 막는 역할을 해야 하며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해 왔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현실을 냉정하게 돌아보면, 교회를 다니지 않는 이들이 기독교에 대해 느끼는 불신과 부정적인 이미지는 매우 깊습니다. 우리 역시 죄성을 지닌 인간이기에 세상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특별히 더 나은 존재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변혁적 과제’만을 강조하는 것은 자칫 세상에 상처를 주거나 공허한 외침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 말씀을 대할 때, 세상을 변화시켜야 할 ‘대상’으로 보기 이전에 우리 자신의 ‘정체성’에 먼저 주목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향해 “세상의 빛”이라 말씀하시며 “산 위에 있는 동네”라는 비유를 드셨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주요 도시들이 해발 500m 이상의 높은 산지에 위치하여 아래에서 누구나 볼 수 있었던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세상이 바라볼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당시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이들은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리더들이 아니라, 하루하루의 삶을 염려하던 평범하고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거창한 사회 개혁을 명령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로 서 있는가가 더 중요함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세상에 보여주어야 할 ‘착한 행실’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합니까? 주님은 자신이 율법과 예언자의 말을 완성하러 오셨다고 하시며, 구약 성경이 강조하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영성을 실천할 것을 도전하십니다. 그 대표적인 모습이 바로 오늘 본문에 나타난 아브라함의 ‘환대’입니다. 아브라함은 가장 뜨거운 대낮에 자신의 장막 앞을 지나던 낯선 나그네들을 발견하고, 그들을 기꺼이 초대하여 발 씻을 물과 정성스러운 음식을 대접했습니다. 자신의 평안한 자리를 박차고 나가 낯선 이들을 용납하고 섬긴 이 환대의 행위는 결국 하나님 자신을 영접하는 거룩한 통로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전쟁과 갈등, 우리 사회 내부의 극심한 세대 간 갈등은 모두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환대하지 못하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중동 평화를 위해 맺어졌던 ‘아브라함 협정’이 무색하게 다시 전쟁이 일어난 현실은 환대의 영성이 사라진 세상의 아픔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나의 경계 밖에 있는 사람들, 마주하고 싶지 않은 나그네와 같은 이들을 기꺼이 품어주는 ‘환대의 영성’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의가 바리새인보다 낫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시편 기자가 하나님을 깊이 만난 후 “내 마음이 넓어졌으므로”라고 고백했듯이, 우리 역시 마음의 경계를 계속해서 확장해 나가야 합니다. 비록 당장 모든 사람을 사랑하기는 힘들지라도,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환대하고 조금 더 사랑하겠노라 다짐하는 것이 바로 빛과 소금의 삶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대단한 업적을 이루기보다 우리가 처한 가정과 일터에서 어떤 존재로 서 있는지를 더 중요하게 보십니다. 이번 한 주간, 우리를 빛과 소금으로 불러주셨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낯선 이들을 향해 마음의 문을 열고, 아브라함과 같은 환대의 삶을 살아감으로써 우리의 착한 행실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선함과 아름다움을 세상에 온전히 흘려보내는 진정한 빛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 번호 | 제목 | 작성자 | 등록일 |
|---|---|---|---|
| 266 | 불편한 주제(호세아 6:1-6 / 마태복음 5: 27-32) - 4월 19일 | 전주강림교회 | 2026-04-25 |
| 265 | 옛 사람들에게 말하기를(출애굽기 20:7-17 / 마태복음 5:21-26) - 4월 12일 | 전주강림교회 | 2026-04-19 |
| 264 |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창세기 18:1-8 / 마태복음 5:13-20) - 3월 29일 | 전주강림교회 | 2026-04-05 |
| 263 | 현존, 긍휼, 평화(시편 24:1-10 / 마태복음 5:3-12) - 3월 22일 | 전주강림교회 | 2026-03-29 |
| 262 |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창세기 18:16-21 / 마태복음 5:3-12) - 3월 15일 | 전주강림교회 | 2026-03-22 |
| 261 | 온유한 사람(시편 37:1-11 / 마태복음 5:3-12) - 3월 8일 | 전주강림교회 | 2026-03-14 |
| 260 | 슬퍼하는 사람들(이사야 61:1-7 / 마태복음 5:1-12) - 3월1일 | 전주강림교회 | 2026-03-07 |
| 259 |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시편 34:15-22 / 마태복음 5:1-12) - 2월22일 | 전주강림교회 | 2026-02-28 |
| 258 | 예수님의 부르심(창 12:1-9 / 마 4:18-22) - 2월15일 | 전주강림교회 | 2026-02-21 |
| 257 | 나사렛을 떠나 가버나움으로 - 2월8일 | 전주강림교회 | 2026-02-1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