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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요약
앗시리아 왕의 마음을 돌이켜서(에스라 6:6-12, 마가복음 1:12-14)
2026-08-29 14:59:07
전주강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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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에는 하나님의 백성을 힘들게 한 이방 왕들도 등장하지만, 반대로 이스라엘에게 호의를 베풀고 도움을 준 고마운 왕들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다니엘을 사자굴에 던져 놓고 밤새 걱정하며 잠을 이루지 못했던 다리오 왕과,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다리우스 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는 과정은 한 성도가 믿음으로 삶을 세워가는 신앙 여정과 무척 닮아 있습니다. 이 여정에는 늘 장애물이 존재합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의 방해처럼 삶을 일시 정지시키고 무너뜨리는 ‘절규의 시간’ 같은 큰 시련이 찾아오기도 하며, 유프라테스강 서편의 다트네 총독 일행처럼 집요한 점검과 질문으로 삶의 여정을 ‘터덕거리게’ 만드는 일상의 시험도 마주하게 됩니다. 이들은 "누가 성전 건축을 허락했느냐"며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습니다. 자녀 양육, 직장 생활, 관계의 문제 등 매일 해결하고 답해 주어야 하는 인생의 짐들은 평소에는 잘 넘어가지만, 내면에 에너지가 없을 때는 우리의 평온을 깨고 영적 어둠으로 밀어내는 작은 틈이 되기도 합니다.
   이 터덕거리는 인생길을 우리는 어떻게 걸어갈 수 있을까요? 오늘 말씀은 다리우스 왕이 베푼 놀라운 호의를 소개합니다. 그는 제국의 변방인 예루살렘의 성전 공사가 합법적인지 알아보기 위해 왕의 서고에서 고레스 왕의 조서를 직접 찾아냈고, 대적들이 더 이상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았으며 필요한 재원까지 아낌없이 지원해 주었습니다. 에스더가 왕후가 된 것 역시 자신의 용모나 실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총과 왕의 호위 덕분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삶 역시 나의 계획과 노력만으로 사는 것 같지만, 실상은 보이지 않는 이들의 수많은 도움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치 가뭄 속에서 죽어가던 아기 ‘더글라스 전나무’가 멀리 떨어진 큰 자작나무로부터 땅속 뿌리를 통해 수분과 당분을 공급받아 살아나듯이, 우리도 보이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과 넓게 연결되어 도움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나아가 신앙은 이 모든 은총과 호의의 배후에 결국 하나님이 계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다리우스 왕의 조서 이전에 ‘하나님의 명’이 먼저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우리에게 필요한 도움의 손길을 보내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호의를 기억하며 감사해야 하고, 나아가 내가 가진 물질과 시간과 마음을 기꺼이 나누어 누군가에게 도움을 베풀어 주는 복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전 완공 후 온 백성이 유월절을 지키며 기뻐할 때, 성경은 다리우스 왕을 굳이 ‘아시리아 왕’이라고 부릅니다. 아시리아는 과거 이스라엘을 잔인하게 억압했던 고통의 대명사이자 우리 역사로 치면 일본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그를 아시리아 왕이라 표현한 것은, 우리를 가장 힘들게 했던 존재나 삶의 가장 뼈아픈 상처마저도 하나님 안에서는 우리를 성장시키고 구원하는 ‘은총의 도구’로 바뀔 수 있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힌 고통이 도리어 복음 전파와 성장의 기회가 되었다고 고백한 것처럼 말입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인생의 모든 어려움조차 결국 하나님의 호의로 바뀔 것을 소망하는 복된 신앙의 여정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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