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6:22-27 / 히브리서 11:13
라합은 여리고 성이 무너질 때 유일하게 구원받은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라합의 이야기는 오늘 말씀에 나오는 구원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1장을 보면 예수님의 족보가 나오는데 그 족보에 나오는 5명의 여인 중 한 명으로 그 이름을 올리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라합이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뿐만 아니라 위대한 신앙의 조상으로 지금도 우리에게 기억될 수 있을까요?
첫째, 라합에게는 그의 삶을 이끌어 가는 믿음의 고백이 있었습니다. 말씀을 보면 라합의 구원은 여호수아의 명령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여리고 성이 무너질 때 여호수아는 라합의 가정을 여리고 성에서 끌어내라고 명령합니다. 성에 그대로 두면 헤렘 전쟁의 방식에 따라 모두 진멸되기 때문에 미리 따로 보호해 놓은 것입니다. 말씀 내용만 보면 보호해 주는 이유에 대해서 정탐꾼들에게 베풀어 준 호의 때문에 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라합의 믿음을 주목합니다. 여호수아 2장 11절에서 라합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위로는 하늘에서 아래로는 땅 위에서 과연 주 당신들의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십니다.” 라합은 하나님을 하늘과 땅의 하나님으로, 온 세상의 주인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 믿음의 고백이 죽음과 생명의 선을 가른 것입니다. 죽음을 맞이한 다른 여리고 성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견고한 여리고 성과 함께 하는 군사들, 가지고 있는 양식들이 자신들을 끝까지 지켜줄 거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라합은 그 모든 것이 사람들 눈에는 견고해 보이지만. 결국 무너지게 된다는 것을, 신앙적으로 표현하면 결국 사라지게 된다는 것을 깊이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라합의 구원은 하나님이 자기 삶의 주인 됨을 인정하는 믿음의 고백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어떤 믿음의 고백이 있습니까? 오늘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명령합니다. 무너진 여리고 성을 절대로 건축하지 말아라. 왜 건축하지 말라고 할까요? 그만큼 이 땅에서 살아가는데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인생을 무너지고 사라지는 이 세상의 여리고가 아니라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는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보이는 여리고를 의지하는 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여리고가 자신들을 구해 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세상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도 그런 마음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어떤 신학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지금의 그리스도인들은 세례받은 이방인이다.” 우리도 때로는 무너져 가는 여리고를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 않을까요? 라합의 믿음의 고백을 따라 우리를 구원해 가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삶을 맡기고 믿음의 길을 걸어가길 원합니다.
둘째, 라합의 믿음은 자신뿐만 아니라 그의 부모, 형제.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이 다 살게 하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믿음의 삶은 내가 살아가고 있는 가정과 공동체 그리고 이 세상 가운데에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이 흘러가도록 하는 삶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나의 생명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이들 함께 살아가는 모든 것이 치유되고 회복되는 삶에 마음을 두고 살아가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생각하고 싶은 것은 라합의 연약함입니다. 라합은 이방인이었고, 그가 살아왔던 삶을 보면 이스라엘 공동체로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연약한 삶을 살아갔던 인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연약한 라합을 통해 자신의 구원 역사를 써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연약한 자들을 주목합니다. 성경 나오는 신앙의 조상들은 다 연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연약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들을 통해 당신의 구원 사역을 이루어가십니다. 고린도 후서 12장 10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연약함은 우리가 하지 못한다. 하지 않을 것이라는 회피와 무기력함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나 혼자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고백입니다. 우리에게도 많은 연약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사용해서, 한계가 있는 교회 공동체를 사용하셔서 자기 구원의 사역을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연약하지만 서로 독려하면서 믿음으로 구원의 삶을 살아가는 복된 신앙의 길을 걸어가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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