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레미야 12:1-4 / 마태복음 13:24-30
오늘 구약 본문은 예레미야 예언자가 “신정론”에 입각해서 하나님께 질문합니다. 예레미야는 악인들이 형통하고, 배신자들이 모두 잘 되기만 한다고 말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께 묻고 싶은 질문이죠?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왜 무고한 사람들이 무자비한 폭격에 죽어갑니까? 의로우신 하나님이 살아계시는데 왜 우리 주변에서는 크고 작은 파괴적 재난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습니까? 악한 세상을 보면서 예레미야는 절규하고 있습니다. 정의의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왜 이렇게 세상이 잘못되어가고 있습니까? 저와 여러분이 세상을 바라보면서 절망하게 될 때 던지는 질문입니다. 이런 신정론의 문제에 있어서 기독교는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는 이원론적 관점에서 이 문제를 설명하려는 견해입니다. 이 세상을 하나님과 사탄의 대결장으로 봅니다. 세상에는 선과 악이 충돌합니다. 하나님은 선을 주도하시고, 사탄은 악을 주도합니다. 이러한 선과 악의 충돌에서 어떤 때는 선이 이기기도 하고, 어떤 때는 악이 이기기도 합니다. 이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악한 일들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탄이 일으키는 사탄의 장난입니다. 이 악한 일들을 극복하는 일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이런 관점으로 신정론을 설명하는 것이 이원론적 관점에서 설명입니다. 두 번째는 불의한 세상을 일원론적 관점에서 보는 견해입니다. 이 세상의 신은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악의 근원은 독립적인 실체로서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악은 인간의 타락과 인간의 탐욕에서 발생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선하게 창조하셨고 바르게 인도하십니다. 그런데 인간의 욕심과 욕망이 자꾸만 하나님의 선한 사역을 방해하고 인간 스스로 곤경에 빠지게 합니다. 세상이 파괴적인 세상이 되어가는 것은 인간의 탐욕과 폭력적 성향으로 인해 출발합니다. 이렇게 설명하는 방법이 일원론적 관점에서 신정론을 설명하는 방법입니다. 성경에도 이원론적 관점에 악을 말하고 있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현대로 올수록 일원론적 관점으로 신정론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참 좋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름답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피조물인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서 세상은 자꾸만 고장이 나고, 악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결코 인간이 대결하고, 충돌하고, 서로를 파괴하며 살아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이 지으신 아름다운 세상에서 더불어서 화해하고, 평화를 이루며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분열이 아니라 일치입니다. 충돌이 아니라 화해입니다. 전쟁이 아니라 평화입니다. 복수가 아니라 용서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탐욕과 욕망이 세상을 자꾸만 충돌과 파괴와 전쟁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일원론적인 입장에서 이런 악한 재난의 사건들을 설명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탐욕으로 그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날 때 하나님은 어디에 계셨습니까 하는 문제입니다. 6.25 전쟁에서 수백만 명이 처절하게 죽어갈 때 역사를 주관하신다는 선한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계셨나요? 지금 세계 곳곳에서 전쟁의 참화로 이유를 알지 못하고 무고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가는데 하나님은 왜 침묵하고 계시나요? 대답이 난감한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우리는 이렇게 신정론을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정의로우신 하나님”이라는 신앙고백은 ‘정의롭게 살아가는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이고, 정의롭게 살아가는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선언’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정의 편에 서 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편에 서 있는 사람이라는 신앙고백입니다. 세상에 악이 활개를 칠 때 하나님은 침묵하지 않으십니다. 저와 여러분을 부르시고, 저와 여러분에게 저와 여러분에게 요청합니다. “제발 나를 좀 도와다오.” 이 폭력의 광기가 번뜩이는 세상에서 정의 편, 평화의 편에 서 달라고 저와 여러분에게 요청하고 있습니다. 정의와 평화의 편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선한 하나님의 자녀이고, 백성입니다. 하나님은 폭력과 살인과 파괴가 난무하는 이 세상을 보고만 있지 않으십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에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내 편에 좀 서라.” 정의와 평화 편에 서는 게 하나님 편에 서는 겁니다. 그리스도인은 정의에 하나님 편에서 서고, 평화의 예수님 편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세상은 점점 더 폭력화되어 가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편에 서서 정의와 화해의 제상을 만들어 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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