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사기 11:4-10, 마가복음 6 :1-6
고향에서 안식일을 맞은 예수님은 회당에서 고향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깜짝 놀랍니다. “예수가 어디서 이런 해박한 지혜를 얻었을까?” 이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권위 있는 가르침임을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가르침의 내용에 감동은 잠시이고 예수님의 신상 털기에 나섰습니다. “이 사람은 마리아의 아들 아닌가/” 아버지 요셉이 일찍 죽어 아버지 돌봄 없이 자란 별 볼 일 없는 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의 형제들인 야고보, 유다, 시몬과 누이들이 지금도 여기 나사렛 마을에서 형편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강한 선입견을 가지고 예수님을 배척합니다. 어린 시절 가까이 지냈다는 사실이 오히려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는 걸림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밖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는 법이 없다.”고 말씀하시면서 고향을 떠났습니다. “친밀함은 오히려 경멸을 낳는다.” 그리스의 격언입니다. 여기에 예수님의 슬픔이 있었습니다. 고향 사람들은 선입견, 시기, 질투가 바탕이 되어 예수님을 판단하고 평가합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친밀한 사람을 경멸하는 대단히 큰 어리석음”을 범했습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 “예수를 배척한 예수의 사람들”인데 모순된 문장입니다. 예수의 사람들이 예수를 배척하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모습을 보면 “예수를 배척한 예수의 사람들”이라는 제목에 적절하게 보입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이 예수를 외면한 사건은 예수 믿는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배척하는 모습과 대단히 유사합니다. 사실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배척하며 살아가는 이유는 예수님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우민화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예수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예수님과는 너무도 다르게 살아갑니다.
대통령 탄핵을 두고 극단적으로 충돌하고 있는 이 엄중한 시기에 그리스도인의 말과 행동은 어찌해야 할까요? 탄핵 찬성을 말하면 좌파 시민으로 몰리고, 탄핵 반대를 외치면 극우적 꼴통 보수주의자로 몰립니다. 기계적으로나마 탄핵 찬성과 반대의 중간에 서 있으면 양비론을 내 내세우는 기회주의자가 되어 버립니다. 친구, 친척, 교인들과도 관계가 깨질까 봐 우리 사회의 현안을 가지고 대화하기가 두렵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생태계의 파괴와 크나큰 기후 변화, 저출산 고령화가 된 사회 등 우리가 풀어야 하는 문제가 산더미처럼 밀려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 탄핵에 발목 잡혀 우리 사회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행동하고 처신했을까요? 이때 우리 그리스도인은 흥분을 좀 가라앉힐 필요가 있습니다. 더 깊이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본질이 무엇인지를 깊이 살펴보고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 계엄을 일으킨 원인 중의 하나가 야당의 “입법 독주”와 “부정선거”를 폭로하기 위함이라고 대통령과 여당은 말합니다. 여기에 크게 동조하고 있는 사람들이 일부 교인들입니다. 교인들이 세상을 바르게 보지 못하는 이유는 폐쇄적인 주일학교 신학에서 벗어나지 못해서입니다. 최근의 한국 교회는 악한 세력과 선한 세력을 판단하는 기준점이 반공과 반동성애입니다. 반공과 반동성애 편에 서지 않으면 누구라도 적대시합니다. 반대로 반공과 반동성애를 외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선한 세력으로 알고 지지합니다. 무당들과 국가의 미래를 논의하는 사람들도 반공, 반동성애를 외치면 선한 세력으로 알고 일부 교인들이 환영하고 지지합니다. 결국 일부 교인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시위를 주도하고, 찬송과 애국가를 번갈아 부르며 집회에 달려가고,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발광하는 이유를 좀 크게 분석해 보면 너무도 협소한 신학, 너무도 폐쇄적인 신앙에 사로잡혔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는 분별력 없는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배척하는 예수의 사람들입니다. 지금 분별력 없는 예수의 사람들이 믿지 않는 사람들의 목에 연자 맷돌을 달아 바다에 빠뜨리고 있는 형국입니다. 지금은 사순절, 참회의 계절입니다. 우리 자신의 신앙과 삶을 하나하나 점검해 보는 계절입니다. 예수님을 가장 잘 아는 고향 사람들 때문에 슬퍼하셨던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예수의 사람인 나 때문에 예수님이 슬퍼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를 배척한 목사, 장로, 집사, 권사라는 말을 절대 들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를 믿는 성도를 넘어서서 예수님이 믿는 목사, 장로, 집사, 권사로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번호 | 제목 | 작성자 | 등록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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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 | 관계 속의 하나님 - 5월 4일 | 전주강림교회 | 2025-05-10 |
234 | 사순절에 드리는 기도 - 4월 6일 | 전주강림교회 | 2025-04-12 |
233 |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라 - 3월 23일 | 전주강림교회 | 2025-04-05 |
232 | 예수를 배척한 예수의 사람들 - 3월 9일 | 전주강림교회 | 2025-03-15 |
231 | 교회와 3.1 신앙 운동 - 3월 2일 | 전주강림교회 | 2025-03-08 |
230 | 예수님의 복음, 하나님의 나라 - 2월 23일 | 전주강림교회 | 2025-03-01 |
229 | 사람을 품는 교회 - 2월 16일 | 전주강림교회 | 2025-02-22 |
228 | 구름기둥, 불기둥 - 2월 9일 | 전주강림교회 | 2025-02-15 |
227 | 축제의 영성 - 1월 5일 | 전주강림교회 | 2025-01-11 |
226 | 내 나이 몇인가? - 12월 29일 | 전주강림교회 | 2025-01-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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