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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요약
교회와 3.1 신앙 운동 - 3월 2일
2025-03-08 16:48:56
전주강림교회
조회수   50

출애굽기 4:18-20 / 누가복음 6:27-31
 모세는 히브리 노예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우여곡절 끝에 이집트 왕궁에서 왕자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모세는 자신에게 주어진 부와 권력과 편안함이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왕궁에서 호의호식하던 모세가 이렇게 자꾸만 불안하게 되는 것은 자신의 출생성분이 히브리 즉 노예라는 사실을 도저히 잊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낳아 준 부모와 자신과 한 피를 받고 태어난 형제자매들은 지금 강제노동과 굶주림에 시달리며 고통당하고 있습니다. 인간이란 생존만으로 기뻐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 생존에 의미 혹은 가치가 주어져야 인간은 참된 기쁨과 행복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모세는 왕자로서 생존에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지만, 왕자로서 그의 삶은 어떤 의미도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이 때문에 모세는 히브리 노예들의 삶의 현장을 틈만 나면 찾아갑니다. 하루는 노예를 때리는 이집트 병사를 모세가 목격합니다. 화가 난 모세는 노예를 때리는 병사를 때려죽이는 사고를 칩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서 모세는 이집트의 왕궁을 버리고 미디안 광야로 도망해서 살게 됩니다. 광야에서 생활하던 모세는 어느 날 양을 치다가 호렙산 떨기나무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인간적으로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하고, 신앙적으로는 하나님을 만난 경험입니다. 이 경험으로 모세는 자신의 동족들이 고통당하는 현장으로 돌아가기로 결단합니다. 처음 노예들의 고난에 동참할 때는 왕자의 직분을 버려야만 했었고, 두 번째 노예들의 고난에 동참하려 할 때는 아내와 가족이 있는 소박한 소시민적 행복을 양보해야만 했습니다. 모세가 돌아가는 길에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있었습니다. 이 말은 두 번째 동족의 아픔에 참여하게 될 때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굳은 신앙”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신앙은 나 혼자의 깨달음과 기쁨과 행복을 넘어서서 가정, 민족, 인류 공동체로 확산하여야 합니다. 
  한국 교회에 있어서 1919년 3.1 만세 운동 이전의 신앙과 이후의 신앙은 상당히 차이가 있습니다. 3.1 만세 운동 이전의 교회는 의식이 깨어있는 교회이었고, 민족의 아픔과 고난에 동참하는 교회였습니다. 민족의 아픔과 고난에 동참해서 위기를 당한 민족의 운명을 바꾸어보려고 행동했고, 기도했던 건강한 교회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3.1 만세 운동 이후에 한국 교회의 신앙은 변질되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은 지금까지 우습게 알던 조선인들이 살아 있음을 3.1 만세 운동을 통해서 경험했습니다. 일제는 한국교회 신앙의 내용을 변질시키려고 시도했습니다. 이들은 선교사들과 한국 교회의 일부 지도자들을 통해서 내세 지향적인 신앙, 개인적인 신앙, 현실 도피적인 신앙을 강조하게 했습니다. 친일적인 선교사들과 일본에 회유당한 기독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기도하고 찬양하고 예배하며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야지 이 땅의 일에 관여해서 안 된다고 역설했습니다. 이런 교회에 너무도 실망한 청년들은 이때부터 교회를 외면하고 떠나게 됩니다. 지금 우리 민족은 일제의 식민 지배에서는 해방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해방된 민족에게 찾아온 또 하나의 시련은 동족의 이념충돌과 분열입니다. 이 분열은 지금도 지속되어서 영남과 호남이 갈등합니다.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갈등합니다. 우익과 좌익의 갈등이 극에 달했던 해방 후의 사회처럼 지금 우리 사회도 우파와 좌파의 갈등으로 빠져갑니다. 현실적으로 지금 우리 사회는 대통령 탄핵 찬성파와 대통령 탄핵 반대파로 나뉘어 갈등합니다. 이 갈등의 몸살을 앓고 있는 지점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한 가지만은 분명해야 합니다. “폭력은 안 된다.” 생각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할 때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면 이는 짐승들이 하는 짓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대통령 탄핵 찬성과 반대도 얼마든지 다른 생각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격조 높은 대화’를 통해서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하고, ‘품위 있는 의견’ 교환을 통해서 상대방과 관계를 이어나가야 합니다. 상대방을 설득하려 하지 마세요. 우리는 다만 자신의 생각을 예의 있게 상대방에게 말하는 것으로 만족하면 됩니다. 예수님이 주신 평화의 정신과 화목 하라는 말씀을 근거로 우리 시대의 꽉 막힌 민족 갈등 문제를 풀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평화의 복음으로 꽉 막혀버려서 갈등하고 충돌하는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놀라운 역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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